일상2018.10.25 16:24

큰 아이를 대안학교로 보내겠다는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또래보다 학습능력이 조금 떨어지고,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여 늘 조용히 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만약 일반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면 학업은 물론 학교 생활 자체에도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어 대안학교 진학을 추진 했으나 최종 탈락하고 말았다.


지원자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사항이 없으면 합격 되는 것이였지만 그런 평범한 상황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가슴 졸이던 와이프는 결과 소식에 망연자실하며 식음을 전폐하듯 멍하니 있었고, 나는 우리 아이의 현실을 본 것 같아 그동안 안일하게 대처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이번 결과가 우리에게 충격적이였던 것은 말 그대로 평범한 학생이면 누구나 합격 되었을 거란 사실이였다.

이 말은 곧 우리아이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을 완벽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였다.


턱걸이라도 합격하길 바랬던 우리부부는 아이의 앞으로 삶이 크게 걱정이 되었고, 더이상은 해 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껴졌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 말 그대로 아이가 앞으로 겪게 된 현실임을 직감했다.


[아깝지만 갈 수 없게 된 학교]


그동안 나는 대부분의 아이 문제를 와이프에게 맡겨 놓았다.

일 문제 때문일 수도 있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살면서 겪어 보지 못한 낯선 일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의 아이에게 조금한 문제가 있다고 하면 인정하기 싫어 한다. 아마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게 참 애매한 것이. 

눈에 띄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혀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항상 사람을 괴롭힌다.

애매한 것은 또는 어중간 한 것은 항상 사각지대를 유발하는 것 같다.


언제 부턴가 우리 가족은 그런 사각지대에서 분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이번 대안학교 입학을 탈락함으로써 적어도 나는 만만치 않고 냉정한 사회를 현실로 느꼈던 것이다.


나름 열심히 아이를 케어해오던 와이프 입장에서는 이번 탈락이 큰 충격이였던 모양이다.

초등학교도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학교를 다닌 아이가 질풍노도의 기간이라는 중학생들과 그것도 몸만 커지고 아직 정신은 커지지 않았을 아이들이 모여 있는 중학교에서 과연 우리 아이가 버텨낼 지, 큰 걱정거리가 곧 다가 올 것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나는 온 몸을 축 늘어뜨린채 아이 침대에서 슬퍼하고 있던 와이프에게 다가가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했다.

오전 결과 발표후 나는 거의 한시간을 생각에 잠겨있다가 문득 뭔가 생각나서 와이프에게 바람쐬고 오자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버스로 조금 떨어진 공원을 찾아 갔고, 얘기를 나눌만한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오늘은 대부분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내가 먼저 요청했다.

감정에 휩싸인 와이프는 이때까지도 아무말도 선뜻 못꺼내고 있었고, 이제는 그런 감정에만 젓어 있으면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와이프는 먼저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나역시 그런 걱정을 했는데 감정에 휘말려 있는 와이프와는 다르게 나는 좀 더 냉철하게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급적 오늘 탈락의 일을 지우려고 했다.


나는 와이프에게 오늘의 결과에 대해 내생각을 주절주절 얘기해 주었다.


이제껏, 아이의 케어를 맡기기만 했는데 앞으론 그러지 않겠다. 뭔가 주도적으로 개입하겠다.

그리고 이제는 아픈 아이라는 걸 인정하자고 했다. 아픔의 깊고 얕음이 아닌 있다는 그 자체를 인정하자고 했다.

이런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지금처럼 잘 되겠라는 막연한 희망만 가지게 될 것이고 그 사이 아이는 망가질 수도 있다고 했다.

중학교를 진학해서 등교후 하교할 때까지 뭔 소린지도 못알아 듣고, 지금처럼 교우관계도 원만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아이에게 학교는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며 냉정하게 판단하자고 했다.

무엇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 고민해서 결정하고, 남들 얘기에 흔들리지도 말고 오로지 아이들만 보고 가자고 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집에서 아이가 알아서 숙제하고 놀게금 방치 하지 말고 모든 걸 같이 하여 이때까지 보인 관심보다 좀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보이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고려한 나만의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한번 추진해보겠다고 했다.


[이미 면접 당일부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와이프]


나는 나의 계획과 생각을 한시간 넘게 말하며 와이프가 느꼈을 오늘의 충격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노력했고, 다행히 와이프는 얼마후 이제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고 했다.


오전에 충격에 휩싸였던 와이프는 다행이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었고, 아이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하던 와이프는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상담 선생님께 연락하여 오늘의 결과를 아이에게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 지 고민 된다는 상담을 했다.


평소 아이를 잘 알던 상담선생님께서는 아이를 먼저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겠다고 했다.

상담선생님은 탈락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혹시나 느낄 충격을 다소 완화시켜주려고 대화를 했던 모양이였다.


어느정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우리 부부는 아이가 학교를 마칠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갔다.

그리고 운동장에서 서성이며 아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비록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전해야 했기 때문이였다.


그렇게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상담선생님과 얘기를 끝낸 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연락을 기다리던 와이프가 전화를 받았다.

아이는 엄마와 전화가 연결되자 첫 마디로,


"엄마 중학교 어떻게 됐어?"


라고 물었고, 와이프는 일단 와서 얘기 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사실 와이프와 나는 아이가 오면 와이프는 말없이 껴안아 주고 싶다고 했고, 그렇다면 중학교 탈락 소식은 내가 전하겠다며 서로 분배를 해놓고 있었다.


멀리 운동장 넘어 아무것도 모르고 걸어오는 큰아이를 보니 조금 마음이 징 했다.


와이프는 큰아이가 오자마자 말없이 껴안아 주며, 지난 면접때 왜 제대로 말 못했냐며 싫은 소리 한 거 너무 미안하다고 아이에게 사과 했다.

그리고 주절주절 면접 당시 아이 행동에 화를 냈던 것에 일일히 사과했고, 영문도 모르던 아이는 갑갑하다며 벗어나려고 바둥 거렸다.


엄마에게 벗어난 아이 곁으로 다가간 나는 아이 손을 잡고 조금씩 걸으며 말했다.


"OO아~ 근데... 아무래도 우리 OO 동네로 못 갈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만약 아이가 이번에 합격하면 가족 전체가 이사를 하려고 마음 먹었고 이미 그런 얘기를 했던터였다.


"왜요?"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고,


"그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조금 많았나봐, 그래서 그런지 우리에게까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


불합격, 탈락, 실패라는 단어들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생각 했던 말이 바로 이번에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말이였다.


"그래요?"


"응. 아쉽지만 못 갈 것 같네....괜찮겠어?"


아이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아깝네.....음......네...뭐.. 괜찮아요. 다른데 가면 되죠 머"


아이 반응이 쿨 한 건지 상황 인지가 부족한 건지 조금은 헷갈렸다.

기분 괜찮냐고 물으니 뭐 어쩔수 없는 거 아니냐고 아이가 말했다.


차라리 실망하는 모습이였으며면 어떻게 풀어주기라도 노력 했을 것이고, 억지로 쿨 한척이라도 했다면 심심한 위로라도 해 줬을 텐데, 아이 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를 보니 괜히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그리고 오늘은 아이가 평소 좋아하던 고기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좋은 소식을 안고 맛있는 것을 먹자라고 와이프와 얘기 했는데, 좋지 않은 소식으로 다소 달라진 분위기였지만 그렇다고 풀 죽어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가까운 고기뷔페에 가서 고기를 마음껏 먹자고 약속하며 오랜만에 가족 회식을 하기로 했다.


오늘 아이의 현실을 본 나는 하루종일 내 아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것 하나만 생각했다.

다른 생각은 너무나도 무의미한 하루였기 때문이였다.


한편으론 생각해보니 지금 상황이 어쩌면 인생에 주어지는 몇 번 없는 기회 중 큰아이가 나에게 주는 또 하나의 선물같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이상 갈 수 없는 학교는 그만 생각하기로 하고 최대한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에게 고기를 구워주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고기 맛도 괜찮은 것 같았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