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부산2018.11.13 07:29

2018년 10월 23일


나를 찾아 떠난 부산 영도 뚜벅이 여행 첫번째 이야기(#1) 보기


부산대교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렸던 나는 곧 비가 그쳐 자리에서 일어나 추억이 깃든 기억 속의 길을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다를 끼고 가는 이 길은 도로가 잘 포장된 것 빼고는 늘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잔잔한 바다였지만 선박끼리 어깨동무 한 채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눈에 띄게 바뀐 거라곤 주황색이던 부산대교가 연한 회색이 되어 있다는 점 외엔 한결 같았다.




언제부터 같은 모습으로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냥 봐도 정말 오래되었다고 느껴지는 건물들

이쪽 지리를 잘 아는 사람만 다니는 바다를 낀 지름길은 많은 자동차들이 연신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곳은 일명 바지선 주차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모여있었다.

실제 다음 지도로 보면 이 지역의 바다는 바지선으로 뭉쳐 있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바지선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결다리가 하늘로 솟구쳐 있다.

불안한 모습으로 솟구쳐 있는 연결 다리는 언제든지 사람이 걸어다니는 인도를 덮칠 기세여서 나도 모르게 돌아서 걸어 갔다.



작은 어선들이 모여 있는 사이로 잠깐 건너편 바다가 풍경이 보였다.




이런 건물은 언제부터 이런 모습으로 있었을까?

영도에는 이와 같이 아주 오래된 건물들을 쉽게 마주 할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나의 어린 시절에도 있었을 것 같다.



오래된 낡은 시멘트 건물엔 작은 영세 공장들이 모여 있는 듯 했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모양새는 비슷한 모야이다.



다양한 선박들이 줄지어 있던 곳을 지나니 조금씩 조선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 건너편에 숨어 있던 크루즈선.

마치 빌딩 하나가 서 있는 듯 하다.



내가 방금 걸어온 길을 돌아다 보았다.

그렇게 많이 걸은 것 같지 않았는데 도로의 끝에 살짝 보이는 회색의 부산대교가 꽤 멀게 느껴졌다.

잠시였지만 꽤 많이 걸어왔던 것이다.



분주한 모습의 조선소.

잠시 뒤, 조선소 내에서 벨소리가 들리더니 많은 노동자들이 줄지어 걸어나왔다.



시간을 봐선 점심 시간을 알리는 벨소리 였던 모양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은 다리 위로 쉴새없이 사람들이 흘러갔다.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식당은 건너편에 있는 모양이다.

다들 먹고 살자고 노력하는 와중에 꿈같은 점심을 즐기러 가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어느 새, 바다를 끼고 있던 도로는 사라지고 아주 오래된 공장 지대로 환경이 바뀌였다.

이름모를 음식점에는 점심을 먹기위해 나온 소규모 공장들의 노동자들이 가득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음식의 향이 그래도 다들 열심히 살고 있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도다리에서 첫발을 딛고 제일 처음 정한 목적지는 내가 졸업한 국민학교를 찾아가는 일이였다.

바다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 새 눈앞엔 6년을 한결 같이 다녔던 학교의 정문이 보였다.



대교 초등학교의 모습. 

그렇게 크게 느껴졌던 운동장은 손바닥 만 했고, 학교 건물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동상도 여전한 듯 그자리에 있었고, 수돗가로 알고 있던 곳은 창고가 되었는지 작은 건물로 대체되어 있었다.



내가 졸업한 학교지만 함부로 들어 갈 수 없어서 옆 건물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저 작은 운동장을 가로 질러 교문까지 나오는 길이 그렇게 멀었던 건가? 

학교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보였지만 그 느낌은 낯설게 느낄 정도로 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비 아저씨께 학교 구경 좀 해도 되겠냐고 물었지만 안된다고 하여 대신 입구에서 사진 몇 장만 찍고 가겠다고 했다.

운동장 오른쪽에 있는 철봉등이 그대로 인 것 같았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철봉 옆에 모래사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수돗가는 '소형차 전용'이라는 문구가 달린 작은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사진 왼쪽 정면에 있는 화단과 건물 사이에는 작은 문방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흔적도 없었다.

너무 오래된 기억을 꺼집어 내다보니 그때 그것이 현실이였는지 꿈이였는지 헷갈리기도 했다.



좀 더 가까이 둘러보고 싶었으나 학교 입구에서 입장이 거절되어 더이상은 들어 갈 수 없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 시간이다보니 비록 졸업생이라고 할 지라도 외부인이 함부로 왔다갔다하면 안되는 일이였을 것이다.

이해는 되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발길을 돌리려니 조금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늘 꿈속에서 약간은 왜곡되어 나타나던 학교의 모습이 조금은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가끔 꾸는 꿈속의 학교는 실제 그 모습이였는데 상상의 모습인지 혼란스럽게 그려지곤 했다.

벌써 30년이 넘었으니 지금 기억 나는 것이 별로 없는 건 당연하면서도 무의식중에 존재하는 기억들이 꿈을 통해 계속해서 기억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참 많은 일들이 생각나는 시간이였다.



아쉽지만 초등학교를 뒤로 하고 6년을 다니 학교 동선을 따라 당시에 살던 동네를 가보기로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고 다음 목적지를 거쳐가는 길이기 때문에 설레임을 안고 걷기 시작했다.



6년을 걸어 다녔던 길이 흑백의 보도블록으로 바뀌었다.

길옆에는 문방구가 줄서 있었는데 어느새 다른 건물들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늘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교통 순찰대.

달라진 건 약간의 건물 형태일 뿐 이곳은 늘 교통순찰대의 자리였고 지금도 그대로 있었다.



그리곤 길을 건너기 위해 건널목에 섰는데 눈앞에 나타난 낯선 풍경.

6년을 건너던 건널목은 그대로 있었지만 그너머는 개발구역을 지정되어 옛날의 모습은 하나도 남김없이 철거되어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철거 된 덕에 봉래산 아래 산복도로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 거주했던 동네로 걷는 중.

문방구가 있던 자리는 약국으로 바뀌었다.

이 곳은 나의 소중한 첫 자전거를 도둑맞은 곳이기도 했다.

문방구 앞 작은 오락기에 정신 팔려 내 자전거를 누가 가져가는지도 모르고 있던.....

그 자전거 잃어버리고 얼마나 울었던지....이런 기억은 생생이 났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도로와 건물들.

자전거를 타며 쉴새없이 왔다가 갔다 했던 곳이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주유소에 난로용 기름을 구입하기 위해 다니던 길이기도 했다.



내가 살던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 개발구역의 경계지역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필이면 딱 내가 살던 집까지 철거가 되어 버렸다.

골목길도 원래 폭보다 2배로 넓혀져 있어서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내가 살던 집도 같이 사라져 버렸다.



사진 왼쪽의 철문이 있는 집 건너편이 내가 살던 집이였다.

지금도 가끔 어머니와 이 때 살았던 집 얘기를 하곤 한다.

작은 주택에 3가구가 살았고, 화장실은 바깥에 있던 집.

작은 뒷마당엔 여름만 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멱을 감았고, 그 뒷마당 구석에 있던 연탄창고는 귀신 들린 곳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젊은 여자가 아이둘과 사연이 많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동네에서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덕분에 어머니는 어린 자녀 두명과 함께 매일 밤을 원인 모를 불면증을 달고 살았던 곳이였다.

아버지가 선원이시어 1년에 한두번 정도 집에 오시지 못해 늘 아이 2명과 삶을 분투했던 어머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기억들이 추억처럼 있는 곳이였는데 그 모든 것이 개발 앞에 사라져 버린 것이였다.



산복도로로 올라가는 지름길 역할을 했던 도로도 이젠 막혀있었다.

불과 3년전만 해도 자동차가 다녔었는데....



사라져버린 내가 살았던 집.

재개발 벽앞에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다른 골목길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유지한채 아직도 세월을 담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은 허탈한 기분으로 더이상 자동차가 달리지 않는 길을 빠져나왔다.



달라진 세월 만큼 '길없음'이라는 글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리고 머지 않은 곳에 또다른 내가 살던 집.

좀 전 이미 사라진 집에서 이사왔던 2층집 이였다.

국민학교의 마지막 해를 보낸 집이고 중학교를 1년간 다녔던 집이였다.

이후에는 영도를 떠나 남구 용호동의 아파트로 이사했고 나는 남은 중학교 생활을 하루 등교시간을 3시간 가까이 써가며 학교를 다녔다.



또다른 골목길에 만난 내 기억의 두번째 집.

이층 단독주택이였고 우리 가족은 2층에서 살았다. 화장실이 1층에 있어서 화장실 갈 때마다 무서워 동생과 함께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싶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살았는데 지금 화장실이 1층에 있는 2층 집에 살아라고 하면 아마도 다들 손사래를 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집도 세월따라 많이 바뀌어있었다.

예전의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색깔도 연두색 황토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없던 옥상도 생겼다.



좀 더 둘러 보고 싶었으나 낯선이의 서성거림이 의심스런 행동으로 오해 받을 것 같아서 최대한 조심해서 둘러봤다.

내가 살던 집의 뒤모습은 원래 볼 수 없었지만 새롭게 도로가 생기면서 볼 수 있었다.

2층집이라고 참 좋아했었고, 나의 사춘기가 시작됐 던 곳이여서 남다른 곳이였다.

지금 보니 정말 작은 집이였다.



다시 골목을 따라 중학교로 가던 동선을 가보기로 했다.

등교시간이 되면 이 골목길은 학교를 가기 위한 학생들이 줄지어 지나가던 곳이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물 흘러가듯 등교하는 많은 학생 사이로 나 역시 몸을 흘려보냈던 그런 골목길이였다.



골목길 끝에는 당시에도 이미 30년은 되었을 거란 얘기가 있던 아파트가 아직도 그모습 그대로 있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아파트는 70년은 족히 넘었다는 얘기가 된다.

비주얼도 그런 사실을 뒷받침 하듯 오랜 세월이 반영된 모습이다.



이 아파트는 재건축이 되지 않는 건가?

어릴 땐, 우뚝 솟아 정면을 가로 막는 크다란 벽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작고 초라한 오래된 아파트로 보일 뿐이였다.



예전엔 담벼락에 유리조각을 박음으로써 외부 침입을 방지하는 형태의 벽이 많았다.

이 아파트는 아직도 유리조각이 박힌 벽이 그대로 있었다.

저 병조각은 모르긴 몰라도 수십년은 되었을 것 같다.

30여년 전에 봤던 그 유리조각 그대로가 아닐까.



거주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듯 아파트 뒷마당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고.

오른쪽 벽에 대통령 선거 벽보가 붙어 있던 것이 기억났다.

아마도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 되던 해였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김대중은 빨갱이라고 해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의아했던 것은 어떻게 빨갱이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지? 라고 생각했었는데...그 당시 정치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고 왜곡되었는지 알수 있는 기억이였다.


사진 오른쪽에 주차되어 있는 공간에는 작은 집이 있었는데 하루종일 염불이 흘러나왔었던 기억도 새롭게 났다.



이렇게 변하지 않고 수십년을 버티고 있는 골동품 아파트는 허물 것이 아니라 남겨 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다.

그리고 아파트 건너편에는 어릴 당시 할아버지가 하시던 납작 만두 가게가 생각났다.

만두피 안에 아무것도 없이 납작하게 팔던 만두.

얼마나 맛있던지 늘 손님이 끊기지 않았던 곳이였는데 지금은 그 가게가 어디즘 있었는지 정확한 장소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이 아파트 앞에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 날 뿐이였다.



터벅터벅 걷다보니 영도의 대형병원인 해동병원이 있는 큰 길로 나왔다.

해동병원 옆엔 극장이 있었던 것 같다.

뒤로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전통시장이 있다.


한참을 걸었더니 발이 아파왔다. 그래서 오가는 자동차를 보며 벤치에서 좀 쉬기로 했다.

눈앞에 마주한 해동병원을 보니 갑자기 목소리가 안나와서 어머님과 응급실을 찾았던 기억이 났고, 하루가 멀다하고 병치레를 하던 동생이 매일 같이 들락 거렸던 기억도 났다.


지금은 큰 도로로 변한 해동병원 앞 도로. 

이 길 건너편에는 친구들과 자주 갔던 오락실이 있던 장소도 기억났다.

지금은 흔적도 없었다.



큰 도로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가 너무 낯설고 생뚱맞게 보였다.

또 자동차 도로만 넓혀진 것이 아니라 인도도 크게 확장되어 있었다.



벤치에 쉬면서 옛날 생각하고 있는데 약간의 바람에 낙엽 쓸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고, 바로 옆 벤치에는 노인들이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내 어린 시절엔 지금의 내 나이였을 분들. 마치 그렇게 보였다.

이 분들이야 말로 영도의 변화를 몸소 느끼며 버텨온 분들이 아닐까.

나날이 달라지는 영도의 변화 앞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지키고 계셨던 모양이다.



영도의 뒷모습은 바뀌지 않은 곳이 많았지만 눈에 보이는 앞모습은 낯설다고 느낄 만큼 변해 있었다.



두세사람 걸을 만한 크기의 폭 인도가 지금은 크게 확장되어 많이 변해 있었다.

내가 다닌 길을 찾는데 애를 먹을 정도 였다. 

좋게 바뀐 것은 좋은 일이나 그 전에 사진으로 담아 두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였다.



영도에 오면 꼭 한번 들려보길 권하는 남항시장.

특히, 이곳에서 먹는 어묵이 일품이다.



중학교를 다니던 길.

이 길을 보는 순간 변하지 않고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으나 이 길에서 풍겨오는 느낌은 '그래도 이곳은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구나' 였다.



이 길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던 문구점이 있었다.

혹시나 아직도 있을까싶어 두리번 거렸더니 조금 다르게 보이지만 내가 생각한 그 문구점이 그자리에 있었다.

그렇게나 크게 보였던 곳으로 대형 문구점이라고 늘 생각해왔던 곳이였는데 다시 보니 조그만 문구점이였다.

이 곳에서 인생 최초로 몰래 물건 훔치다 걸려 된통 혼 난 기억이 새록새록 나며 나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당시 문구점 주인에게 걸려서 얼굴이 홍당무가 됐었는데 그때 그 기억이 또다시 내 얼굴을 빨갛게 만들었다.

아마 조그만 만화책을 가슴에 집어 넣다가 틀켰던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중학교 시절이였는데 첫 도둑질에 바로 들키고 혼나는 바람에 더이상 그런 시도는 평생 하지 않고 살던 계기가 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참 감사한 문구점이다.



드디어 만난 나의 중학교.

그다지 좋은 기억이라곤 없지만 한번은 가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일단 첫 대면은 뒷모습욿 중학교를 마주했다.



여기에 전차가 다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비석이 있는 교차로를 돌아가면 학교 정문으로 가는 길이다.



어느새 도착.

지금은 학교를 개조해 만든 멀티미디어 센터 주차장에서 내가 다닌 학교를 보았다.

마침 점심시간이여서 학생들이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었다.

천진난만 개구쟁이 모습은 철딱서니 없던 나의 어릴때 모습과 쏙 닮아 있었다.

중학생 이마에 '나는 개구쟁이'라고 적혀 있는 듯 어딜가도 그런 학생들은 눈에 띄었다.



학교 정문. 

큰 도로가에서 작은 골목길로 조금 들어가면 학교가 있다.



어쨌든 드디어 도착한 부산 남 중학교.

좋은 기억이라곤 하나도 없고, 오히려 내 꿈이 뺏긴 장소라고 지금도 생각하는 곳이여서 오히려 국민학교 보다 기억이 없는 곳이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나의 꼬인 인생사슬을 풀고 싶다고 말했던 이곳.

살면서 가장 선명한 마음의 상처를 가지게 된 곳 바로 이곳 중학교 시절이였다.


1학년때 친구에서 받은 치욕스런 상처와 2학년때 담임에게 받은 내 꿈에 대한 상처.

그래서 일까. 나는 중학교 3학년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몇 반이였는지 교실은 어디에 있었는지 나의 반친구중 기억나는 학생 한명도 없고 심지어 담임이 누군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기억하기 싫어 했던 마음이 기억을 지웠는지도 모른다.


부산남중학교는 나에게 그런 곳이였다.



막상 왔지만.

이 학교는 더이상은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건물은 반가웠지만 학교는 반갑지가 않았다.

그저 학교 로고가 변함이 없다는 사실만 느끼고 있을 뿐이였다.

학교 뺏지로 달고 있던 저 로고 디자인. 언제봐도 개인적으로 촌스럽다고 느껴진다.



나의 1학년 교실이 있던 출입구.

학생들이 출입구 앞에 앉아서 쉬고 있다.



여기도 지금 보니 운동장이 참 작다.



점심시간이 되면 늘 씨름을 하던 모래장은 실내체육관으로 변해 있었다.

모래장을 생각하는 순간 이곳에서 체력 검증하던 기억도 새롭게 떠올랐다. 

턱걸이 10개 했다고 좋아했던 기억과 장거리 달리기를 우수한 기록을 내서 잠시 기뻐했던 것들...


그나마 조금 좋았던 기억은 1학년 때 였다.

수업을 즐겁게 하던 국어 선생님(여자 선생님이였다)과 굉장히 예쁘고 심성이 좋았던 담임 선생님(이분도 여자 선생님),  마지막으로 담임이 몸이 안좋아 1학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후임으로 온 당시 상고 머리라는 특이한 헤어 스타일을 하고 오셨던 마음씨 좋은 또 여자선생님.

처음 담임 선생님은 자주 자리를 비우곤 해서 소풍이나 행사때 찍은 단체 사진에는 늘 다른 선생님이 서 있었다.

가끔 중학교 1학년 단체 사진 몇장을 보다 보면 전부 다른 선생님만 있고, 단 한장만이 담임 선생님고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이런 사진이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니 정말 별로 인 것 같다.

특별히 물리적으로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사진에는 같이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1학년때는 여자선생님들 덕에 좋은 기억이 조금은 있었던 것 모양이다. 이렇게 기억이 억지로라도 나는 것을 보면....

그 기억이 비록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만큼 중요했던 건 아니였지만 재미난 기억임은 틀림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좋은 느낌도 2학년 담임인 미술 선생과 약간 사시여서 도대체 누굴 보고 화를 내는 건지 알아채기 어려웠던 영어선생을 만나긴 전까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분들도 여자선생님이였다.


한마디 하자면, 선생은 자신의 그릇된 행동으로 어린 학생의 꿈을 한순간에 물거품 또는 포기하게 만들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학생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쳐다보고 있으니 오만 생각이 다 났고 때론 화도 났고 때론 무덤덤했다.


위에 적은 글을 다시 보니 중학교 시절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조금 주절거렸지만 오늘은 내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그냥 놔두고 싶다.



학교 건물 크기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학급수는 많이 줄어들었다. 

한반에 20여면 남짓에 그것도 3 또는 4학급이 전부였다. 

점심시간이 시장처럼 북적되던 당시완 달리 지금 한산한 이유도 이런 이유였나 싶다.



이제 특별한 일 없으면 여긴 가급적 오지말자고 다짐하며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흰여울문화마을로 가기로 했다.




흰여울문화마을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다보니 내가 다니던 지름길이 눈에 들어왔다.

딱 한눈에도 지름기로 다니던 골목길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지름길이 없다면 큰 길로 둘러와야 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 이 골목길이 등교시간을 단축시켜주었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 일 것 같은데 이 곳은 여전히 남중학교 학생들의 훌륭한 등교길이 되어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등교 지름길이였던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바로 옆에 남항시장이 보였다.


그리곤 나를 찾는 여행을 마무리하며 영도의 유명관광지 흰여울문화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왜 나를 찾는 여행이 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내가 겪은 경험을 통해 내 아이에게 닥쳐 올 세상에 대한 올바른 준비와 풍부한 경험을 전달하거나 나 자신도 참고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희미한 경험을 찾아 아이의 미래를 예측하고 무엇이 아이에게 가장 현명하고 좋은 선택이 될 지 우선 나부터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기 위에선 가만히 앉아 회상만 하기엔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늘 생각했던 어릴 적 내고장으로 뚜벅이 여행을 하면서 나를 찾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때론 단 한번의 시행착오가 나비효과가 되어 미래를 좌지우지 하기도 하고, 훌륭한 멘토는 누군가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겪은 나의 경험을 토태도 아이가 겪을 시절을 가장 이상적이게 제공해주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실패에서 찾아보는 성공의 길을 찾는 일? 그럴싸한 이름을 붙히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공이 의미하는 큰 성과를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어떤 결심이 필요하고 부모가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는 분명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답을 찾은 건 아니였지만 답에 조금은 가까이 한 것 같아서 의미 있는 시간이였다.


이제 그런 나를 찾는 여행은 그만하고 이제 뚜벅이 여행 그자체 의미가 있는 흰여울 문화 마을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리 멀지 않는 곳이고, 또 익숙한 길이기도 하며, 여기까지 온 김에 걸어서 좀 더 많은 영도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익숙한 동네를 걸어다니는 장점이 이렇게 발휘 되는 것 같다.



영선 아래 사거리. 

아래 사거리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하고.

윗에 회전로터리가 있는데 그곳은 윗로터리라고 예전부터 불렀던 것 같긴했다.



영선사거리 앞. 남항대교로 가는 길.

송도해수욕장 방향으로 이제는 쉽게쉽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남포동, 자갈치를 지나야 해서 시간 소요가 컸던 지역이였다.



뜬금없이 나타나는 벽화.

지금 생각해보면 저 곳이 유치원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제 2 영도교회



곳곳에 곧 무너질 것 만 같은 건물들.

이번에 보니 영도가 과거와 현재가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슬슬 과거의 모습을 털고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 같다. 

사진을 좀 많이 담아두고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걷고 걷다보니 어느 새 확 트인 풍경과 마주했다.

바다 건너 뚜렷이 보이는 송도 지역.

내 눈엔 송도해수욕장이 보이는 듯 했다.



이제 이 오르막만 오르면 내가 알고 있는 해안가 마을. 흰여울문화마을이 있는 곳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동네.



남항대교와 테트라포드가 널려 있는 절영로.

이 곳을 제2송도라고도 불렀던 것 같은데.....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흰여울문화마을로 가는 오르막을 가기도 전에 산책로가 나왔다.

절영해안산책도로라고 한다. 

아~ 내 기억 속 절영로의 모습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던 자갈밭, 제2송도로 불릴 만큼 사랑 받던 이곳의 예전 모습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렇게 변했구나'라는 말만 반복했다.



절영 해안 산책로를 걸어가도 흰여울문화마을 가는 길과 통한다기에 바다를 끼고 걷기로 했다.

평일 낮인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이 곳을 찾아와 사진을 찍으며 좋은 추억을 쌓고 있었다.


혼자 걷는 기분이 조금 오묘했지만 오히려 혼자여서 오로지 내 위주로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곧 나타날 흰여울문화마을을 눈앞에 앞두고 있었다.

<흰여울문화마을 방문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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