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경상남도2018.11.18 15:14

2018년 11월 5일

진주성 여행

입성후 촉석루에서 휴식을 취하고 논개가 적장을 안고 뛰어내렸다는 의암 앞에 서서 여러가지 생각에 잠긴후 다시 성 안으로 들어와서 본격적인 진주성 투어를 시작했다.

계획했던 대로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하며 진주성이 내놓는 풍경과 가을의 향기를 뜸뿍 느끼고 있었다.




촉석문과 그 옆으로 뻗은 성벽의 모습



임진대첩 계사순의단으로 가는 계단




임진대첩 계산순의단은 제1차 진주성 전투(1592)와 계사년인 1593년의 제2차 진주성 전투 때 순국한 7만 군관민의 호국영령을 기리는 제단이라고 한다.



진주성의 또다른 입구 공북문과 나무에 살짝 가려서 잘 안보이지만 김시민 장군 동상도 있다.



형형색색 가을을 붉히는 단풍나무




치열한 전투속에서도 생명의 근원이 됐을 우물이 한가운데 있었다.



공북문의 모습



진주성 성벽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가 돌아본 촉석루의 모습.



성 밖 아래 강변길로 가는 길.

여유가 있다면 아래 강변길로 걸어보는 것도 운치 있고 좋을 것 같았다.





노란색의 은행나무 배경이 눈을 맑게 해주었다.



성벽을 따라가다보니 때론 넓은 평지가 때론 오르막과 계단이 나타났다.







어느새 진주성 성벽을 따라 절반 정도를 걸어왔고 아래를 보니 남강을 가로지르는 천수교가 보였다.



진주성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가는 길.

가장 높은 곳엔 서장대라는 누각이 있어서 왜적을 감시 할 수 있는 일종의 초소 같은 곳이 있다




진주성의 서쪽 끝을 지키고 있는 서장대





서장대의 모습.

천혜의 요새였던 진주성은 앞엔 남강이 막아주고 서쪽은 절벽이 적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함락이 어려운 성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주로 촉석문이 있는 동쪽이 공격 대상이 되었고, 제 2차 진주대첩에서도 촉석문 성벽이 무너지면서 함락되었다고 들었다.



서장대에서 바라 본 진주 천수교의 모습과 음악분수대



진주성 서쪽의 끝은 찍었으니 이제 다시 진주성 동쪽으로 걸어갔다.



호국사



계단을 내려가면 호국사와 마주한다.



서장대에서 내려온 계단



호국사를 지나 다시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창렬사



단풍을 보며 걷고 풍경을 보며 걸으니 다리 아픈 줄도 모를 지경이였다.



휴관중인 진주국립박물관



진주성의 포루



성밖을 향하고 있는 포의 진지.



지대가 높아서인지 진주 북부지역 시내가 다 보였다.



남강이 보이는 성벽 길과는 다르게 반대쪽 길은 많이 한산했다.

간간이 사람들과 마주치긴 했는데 남강쪽 성벽과는 큰차이가 있었다.




공북문 근처까지 다달았을 때 만난 또다른 누각.



촉석루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규모였으며 북장대라고 하며 진남루라고 부르는 누각이였다.




진남루 마루바닥의 모습

습관처럼 누각을 가면 마루바닥을 찍는 것 같다.



촉석루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 진남루는 한 두명 외엔 없었다.

나도 적당한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알쓸신잡3 진주편에서 출연자 김진애 선생이 박경리 작가님이 졸업하신 진주여고를 방문했었는데 나도 맵을 통해 혹시나 이곳에서 진주여고가 보이지 않을지 찾아봤다.



삼각형 모양의 진주여고 모습.

오른쪽 건물은 파란색 썸모텔이 가로막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저 곳이 바로 박경리 작가님이 다니셨다고 지금도 그 흔전이 남아 있는 진주여고라고 생각하니 한번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평일이고 한참 수업 할 시간에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질까봐 멀리 진주성 진남루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용다리 전설의 흔적이 남은 곳.


날에 이씨 성을 가진 군수가 있었는데, 딸만 셋이었다.그 가운데 둘째 딸은 시집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고 친정에 돌아와 수절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군수 집에는 돌쇠라는 우직한 하인이 있었다. 그는 군수의 둘째딸이 돌아온 뒤로부터 더욱더 열심히 일하고 집안의 잡일도 말없이 거들어 주곤 하였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돌쇠의 눈에 이상한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군수의 둘째 딸을 만날 때마다 평소와 다른 어색한 태도를 보이며 어떤 때는 한숨을 쉬다가 어떤 때는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젊어서 과부가 되어 긴 밤을 홀로 지새던 군수의 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써 주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돌쇠가 좋게 느껴졌다. 갈수록 좋은 감정이 쌓여서 마침내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신분의 차이가 엄격한 시대에 두 사람의 사랑을 함부로 드러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마주 보지만 속내를 전하지도 못하고,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사이로 지냈다. 그렇게 속을 태우던 군수의 딸은 시름시름 상사병을 앓기 시작하더니 약을 써도 소용이 없어 그만 죽고 말았다.

군수의 딸이 죽은 것을 보고 미칠 것 같았던 돌쇠가 진주성에서 선학재를 넘어 장사를 지내러 가다가 길목 용다리 위에서 무심결에 개울물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자신의 얼굴이 귀신같다가 죽은 아씨의 얼굴같이 보이기도 하여 자신도 모르게 “아씨-” 하고 소리쳐 부르고 말았다. 사랑이 너무 간절하였던 돌쇠는 그 길로 미쳐버렸다.

군수도 딸을 잃자 진주에 더 이상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어 충청도로 떠나고자 하였다. 진주를 떠나던 날 용다리를 건너면서 뒤에 따라와야 할 돌쇠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 찾아보니 돌쇠는 용다리 옆 고목나무에 목을 매어 죽어 있었다.

그때부터 조용하던 용다리 아래에서 수천 마리의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였다. 듣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마치 돌쇠가 울부짖는 소리로 들렸다.

그 뒤부터 용다리 아래는 진주시에서 개구리가 제일 많이 모여 우는 곳으로, 짝을 이룬 남녀나 부부가 지나가면 울음을 그쳤으며,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용다리를 두 번 왕래하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북방대(진남루)에서 휴식을 끝내고 막판 스퍼트를 하며 성벽 투어의 끝을 향해서 걸었다.







성벽을 따라 한바퀴 돌아 공북문까지 다시 도착했다.



공북문을 등에 대고 바라본 촉석루 가는 길



처음 입장했던 촉석문으로 갈지 아니면 공북문에서 성벽투어를 마칠지 잠시 왔다갔다하며 망설이다가 공북문으로 퇴장하기로 했다.

왜냐면 촉석문은 입성하기 위해 성밖에서 부터 그 자태를 보았지만 공북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공북문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김시민 장군 동상.



힘들었지만 큰 의미가 있었던 진주성 투어를 마치며 공북문을 빠져나왔다.




진주성 공북문과 그 앞 주차장.

그러고보니 약 10여년 전에는 이 공북문으로 진주성을 입성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밖에서 바라본 성벽.

아마도 이 곳이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지 않았을까.



진주성 밖 도로



촉석문과 연결된 성벽의 모습.

제2진주대첩은 함락은 이 곳이 무너지며 시작 되었을 것이다.



성밖에선 한참 발굴이 진행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처음 입장했던 촉석문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이번 진주성 투어는 마쳤다.

다시 가방 속에 카메라를 집어 넣으며 재밌고 뜻깊은 투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2진주대첩 역사 방송을 시작으로 계획했던 이번 투어는 혼자여서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걸음걸이로 부담없이 갔다온 여행이였다.

배고픔도 잊고 걸었는데 막상 투어를 마치고 나니 허기가 밀려와서 아무거나 먹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도 배고픔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진주성을 걸으며 다양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였다.


김해에서 시외버스로 찾아왔던 이번 투어에는 비용이 2만원 정도 밖에 들지 않은 그야말로 알뜰 여행이기도 했다.

이런 여행이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혼자 떠나는 뚜벅이 여행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진주성 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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